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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행 세계 꼴찌의 충격
  • 작성자 삼덕회계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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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6-06-08

한국사회의 수준을 얘기할 때 경제는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 라는 자조(自嘲)를 곧잘 떠올린다. 경제와 기업경영은 그런대로 잘 나가는 데 정부가 항상 발목을 잡고, 정치는 그보다 수준이 훨씬 떨어진다는 한탄이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2016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대상 61개국 가운데 29위에 랭크됐다. 지난해보다 4단계나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31위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다. 타이완(14위)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25위), 체코(27위) 태국(28위)보다 뒤졌다.

IMD는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세계 각국의 국가경쟁력을 매년 평가하는 양대 기관이다. IMD 평가는 정부효율성 경제성과 기업효율성 인프라 등 4개 분야를 종합해 이뤄진다.

항상 상위권에 맴돌던 경제성과 부문은 15위에서 21위로 밀려났다. 경제성장률은 15위에서 32위로, 취업자 증가율은 14위에서 26위로 떨어졌다. 저성장 기조와 고용 둔화 추세가 반영된 결과다.
정부효율성은 26위로 전년보다 2단계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 20위권을 맴돌고 있다. 인프라 부문에서 과학 인프라(6→8위), 기술 인프라(13→15위)도 밀리는 추세다.

문제는 기업효율성이다. 37위에서 48위로 무려 11계단이나 내려앉았다. 전체 국가경쟁력을 끌어내린 주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효율성을 평가하는 5개 세부지표 중 경영관행은 53위에서 61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은 60위, 기업윤리 실천정도는 58위, 소비자의 건강․안전에 관한 관심정도는 56위, 고객만족을 중요시하는 정도는 46위였다. 실로 참담한 성적표다.

IMD 조사는 설문조사 비중이 높아 응답자의 심리적 요인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응답조사가 4월 이후에 집중되고 조사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분위기에 조사결과가 영향을 많이 받게 돼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6년 IMD 조사결과를 보도참고자료로 배포하면서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구조조정이 이슈로 부각되고 기업윤리 관련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순위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곁들이기도 했다.

설문조사 기간에 터진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경영관행 평가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하지만 최악의 성적표가 돌발사건 하나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기업들의 낮은 윤리의식,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위기에서 '먹튀'를 보여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일부 오너가(家)의 슈퍼 갑질, 사회적 책임의식과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채 회사 직원들을 노예 부리듯 하는 경영관행이 외국인들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다.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어느 정도냐는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건강·안전에 대한 관심도 항목에서 56위, 경제․사회적 책임에서 거의 꼴찌(60위)를 기록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독성실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살균제를 썼다가 수백 명이 사망한 황당한 사태, 사고 후에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기업들의 뻔뻔함, 이런 사태를 사실상 방치한 정부의 무책임은 하나같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다를 게 없다.

경영관행 못지않게 큰 충격은 회계투명성 부문에서 61위로 꼴찌다. 회계투명성은 2013년 58위, 2014년 59위, 2015년 60위로 추락하다 금년에는 61위 로 꼴지가 됐다.

우리의 회계수준이 개도국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금융당국과 회계 법인들은 펄쩍 뛴다. 하지만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 경쟁력조사에서도 한국의 회계투명성은 151개국가운데 72위로 하위권이었다.

주요 외국기업인들이 한국기업의 재무제표들을 여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유력한 반증이다. 회계법인 뿐 아니라 회계투명성을 경시해 온 한국 기업문화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업치고 분식회계 하지 않는 곳은 없다'는 우리 재계의 속설(俗說)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 

외부의 신뢰를 얻으려면 기업외부감사인 지정제도를 제대로 운영해 감사인원과 시간을 확충하고 당국도 부실감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처벌수위를 높여 분식회계를 눈감아주지 말아야한다.

물론 IMD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기업의 윤리의식과 책임감, 회계투명성과 경영관행은 통계나 수치로 객관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대방이 느끼는 인식이 통계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더구나 해마다 같은 잣대로 평가하기 때문에 한 나라의 경쟁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세냐 하락세냐를 시계열로 비교할 수 있어 이를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만성적인 취약 분야인 노사관계 등 노동시장 효율성은 전년보다 16단계나 추락했지만 최하위는 아닌 51위였다. 노동개혁만 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 같지만 기업시스템 개선 등 기업개혁 또한 못지않게 시급하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 임원으로 일했던 한 외국인은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리더의 업무지시에 'Why(왜)'도, 'No(아니요)'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을 보고 쉽게 개선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일방적 지시와 비효율적 회의, 하급자에 대한 모욕과 폭언 같은 후진적 기업문화가 창의와 혁신을 갉아먹어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막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국가경쟁력 하락은 박근혜 정부 들어 굳어지는 추세다. 2011~2013년 3년 연속 22위를 기록한 뒤 재작년 26위, 지난해 25위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아예 주저앉은 것이다. 가라앉고 있는 한국경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더 걱정스럽다.

노동개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규제개혁으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업시스템과 경영관행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작년 WEF 평가에서는 한국금융의 수준이 세계 87위로 아프리카 우간다(81위)보다 못하다는 수모를 당했었다. 경영관행과 회계투명성 분야 세계 꼴찌인 상황에서 우리의 재계와 기업인들이 무슨 자격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3류, 4류라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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