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증권

홍콩 ELS 조정안에 이해관계자들 '와글와글'…짙어진 '관치 악몽'
  • 작성자 삼덕회계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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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4-03-27

투자자 "사건 발생 후에야 대책 마련, 금감원 직무유기" 금융권 관계자 "ELS 배상 결론 내고 금융사에 지침 내렸다는 느낌 지우기 어려워" "금융당국,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 있다" 일침도

조세일보
◆…사진=조세일보 DB
 
우리은행이 금융감독원의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하면서 은행권의 자율배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자율조정'임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조정안이 투자자와 금융회사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일방소통'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 문제 해결을 위한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판매사가 부담해야 하는 최대 배상 비율이 100%에 이를 수도 있지만 은행의 경우 25~50%의 판매자요인 배상비율에 가산항목과 차감항목, 기타조정을 반영해 최종배상비율(20~60%)이 산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금융권 최초로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ELS 투자자에 대한 자율조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를 접촉해 배상절차 등 자율조정 내용 안내를 시작으로 본격 조정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KB국민은행은 ELS 자율 배상과 관련해 오는 29일 임시이사회를 열기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도 같은 날 임시이사회 개최를 예정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7일 임시이사회에서 자율배상안을 의결한 후 이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NH농협은행 역시 28일 이사회에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감원이 제시한 ELS 관련 '자율' 배상안은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투자자는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은 사실상 금융회사의 입장만 대변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품 판매를 사전에 막지 못하고 사건이 발생된 이후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려는 행태는 금감원의 직무유기"라고 토로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금감원은 금융회사가 자율 배상에 나서라고만 했지 제재 경감 등 다른 부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준비하지 않았다"며 "또한 금감원이 ELS 배상에 대한 결론을 이미 내고선 금융회사에게 지침을 하달했다는 느낌을 지우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배임'과 관련된 언급을 한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주와 금융회사가 해결해야 할 부분에 대해 법원도 아닌 금융당국이 '지침'을 내린 것은 권한을 넘어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ELS 대규모 손실 사태의 책임이 감독당국에 있는 게 아니냐는 점에 대해 "배임 관련 업무를 20년 넘게 했는데 소비자와 부담 나누는 게 배임 이슈에 연결되는 건 먼 얘기"라고 말했다. 은행의 자율배상은 배임이 아니란 점을 언급하면서 은행권의 자율적 배상 결정을 촉구한 셈이다.

앞서 전날(12일)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금감원이 나름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건데 왜 배임 문제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거듭되는 금융당국의 월권에 관치금융 확산과 금융당국의 일방적 소통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회장 선임, 배당정책 등 개별 기업이 결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면서 과도한 개입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상생금융 지원과 관련해서도 금융권과 소통하기보다는 금융당국이 생각한 방향을 제시하고 금융권에 동의를 구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고 있다. 이번 홍콩H지수 ELS 분쟁조정기준안도 그 선상에 있다고 폄하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문제가 발생하면 미흡했던 부분이나 잘못에 대해 개선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금융지주, 은행 등 개별 기업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라며 "금융당국은 건전하고 공정한 금융시장 확립, 소비자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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